다크나이트(The Dark Knight)의 사운드 디자인

2013. 12. 17. 14:35

스카이워커 사운드에서 사운드 포스트-프로덕션을 담당한 다크나이트는 사운드 업계의 많은 분들이 레퍼런스라 칭할만한 퀄러티를 자랑합니다. 이미 워너 브러더스의 많은 블락버스터 영화의 사운드를 담당했던 대규모 스튜디오인 만큼 축적된 노하우와 많은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최적화된 워크플로우로 가능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다크나이트 이전과 이후에도 스카이워커 사운드는 동종업계인들이 부러워할만한 퀄러티와 환상적인 사운드 디자인, 첨단 장비들로 이 계열의 교본처럼 여겨진 것도 사실입니다.

이미 다크나이트 라이즈까지 상영된 시점에 다크나이트를 제조명하는 이유는 사운드의 완성도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의 완성도에서도 1편과 3편을 뛰어넘는 높은 평가를 받는 시리즈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리즈를 통틀어 진정한 악당으로 평가 받고 있는 조커가 등장하는 편이기도 하며,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배트팟(Bat-pod)이 등장하여 메니아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엔지니어링적인 관점에서는 깔끔한 리-레코딩 퀄러티가 완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영화의 흐름에 힘을 불어넣어 주는 독특한 사운드 디자인이 추가되어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극한으로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음악 없는 8분의 임펙트

하비 덴트가 자신을 배트맨이라고 속이고 수감되어 자동차로 호송되는 시퀀스가 있습니다. 터널 안에서 조커가 호송차를 향해 총을 쏘고 RPG-7을 날립니다. 자동차 몇대가 파손되고 위기의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때 배트텀블러가 등장하여 포를 대신 맞아 줍니다. 대파되어 버린 배트텀블러 안에서 배트팟이 그야말로 멋있게 뛰쳐 나오고 터널과 건물 안을 광란의 질주를 하며 쫒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조커의 트레일러와 격돌하게 됩니다. 박진감 넘치는 추격 및 폭파 신부터 배트팟 최초 사출에 이은 조커의 트레일러를 쓰러뜨리는 장면까지 하나 하나 명장면의 연속이지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이러한 박진감 넘치는 전개에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두번째 볼때야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스코어 음악이 어디갔지?

그렇습니다. 8분여동안의 추격신동안 음악은 단 20초만 나옵니다. 배트팟이 ‘굿바이’라는 맨트와 함께 멋있게 뛰쳐나오는 초반 20초만 스코어 음악이 나옵니다. 그 음악 마저도 백미러에 부딪힌 배트팟 소리와 함께 급격하게 음소거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사운드 이펙트들 뿐입니다. 그중에서도 앰비언스는 최소화 되었고 오로지 자동차 엔진음과 총소리, 간간히 나오는 대화 소리가 전부입니다. 특히 시퀀스 중후반으로 갈 수록 배트텀블러와 배트팟의 엔진소리가 압도적으로 해드룸을 장악합니다.

이러한 자동차 추격신, 총격신, 긴장감이 감도는 대결구도에서 의례적으로 어쩌면 ‘당연히’ 음악이 들어가야 한다고 많은 분들이 생각할 것입니다. 늘상 이러한 장면들에서는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함께 했던 모종의 관습적인 기억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보기좋게 이러한 고정관념을 뒤집어버립니다. 그것도 아주 깔끔하게, 눈치 채지 못할정도의 퀄러티로 말이지요. 실로 대단한 결과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헐리웃 영화를 보더라도 스코어 음악이 상당히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부터 과격한 액션신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수의 스코어 음악이 사용됩니다. 멀리볼 것도 없이 다크나이트 안에서만 보더라도 음악이 없는 신이 두신이상 이어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본 포스팅을 작성하면서 다시 한번 블루레이 버전을 확인해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시간상으로도 음악이 없는 시간이 5분 이상 이어진 경우는 이번 경우를 제외하고는 없었습니다.

왜 스코어 음악을 제외하고 구성했는지에 대한 인터뷰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만, 유추해보면 사운드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시도해볼만 한 욕심이 나는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초반 터널신에서는 트럭 엔진음으로 긴장감을 조성시키고, 후에 벌어지는 총격신으로 영상을 이끌어갑니다. 이미 이 두가지 소스만으로도 해드룸을 가득 채울 수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배트텀블러가 등장한 이후는 특유의 다양한 피치의 조화로 이루어진 힘있는 엔진 소리로 더욱 소리를 가득 채울 수 있게됩니다. 스코어 음악이 줄 수 있는 긴장감을 엔진소리가 모두 대신 해결해주고 있지요.

배트팟이 등장한 이후에는 20초정도 음악이 나왔다가 깔끔하고 박력있는 엔진소리가 귀를 감쌉니다. 터널 및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의 공간감이 주는 잔향효과가 베리에이션을 주며 지루함을 달래주고, 서서히 증가하는 엔진음의 피치로 인하여 긴장감을 극대화 시키는가 하면 방향을 회전할때에는 독특한 버추얼 이펙트로 소리에 재미를 불어넣습니다. 디자인의 백미인 트레일러가 뒤집어지는 장면과 배트팟이 벽으로 올라서서 턴을 하는 장면은 완벽한 사일런스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임펙트를 극대화시키기도 합니다.

이러한 테크닉은 후반에 한번 더 쓰입니다. 병원 폭파신인데요. 조커가 병원밖으로 나오면서 스위치를 눌러 건물을 폭파시키는 장면에서 역시 음악이 쓰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대피한 병원에서의 정적과 끔찍한 폭파음은 매우 극명한 대비를 이루어 관객의 뇌리에 깊이 파고듭니다. 이러한 장치는 음악이 이어주는 선형적인 신의 분위기 메이킹과 또 다른 매력적이고 신선한 느낌을 안겨주게 됩니다.

이렇듯 잘 되어있는 사운드 디자인은 음악을 대신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질수도 있다는 점을 본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기가 많이 들어가고 소리가 풍성하게 들어가야만 좋은 음악이 아니듯이 스템이 많이 들어가고 소리가 꽉꽉 들어차야만 좋은 사운드 디자인은 아닌 것이지요.

피치업 라인(Pitch up Line)과 사일런스 비트(Silence Beat)의 활용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방법으로 자주 활용하고 있습니다. 피치업 라인은 단음의 1~3가지 트릴 느낌의 악기를 피치를 점차 올리는 방식으로 긴장감을 점차적으로 높이는 신에 즐겨 사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시장 연설 때 총격전 바로 이전까지 시퀀스와 조커의 트레일러와 배트팟이 마주보고 가속하는 장면에서 사용되고 있는데요. 이는 마치 배트팟이 가속하면서 내는 엔진음과도 성격이 유사합니다. 서서히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특정 사건의 서막을 알리는 준비단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이러한 유사성 때문에 배트팟 가속 장면에서 스코어 음악이 사용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죠.

또 다른 테크닉으로 사일런스 비트가 있습니다. 주로 긴장감있는 사건의 발단이나 액션 시퀀스에서 휴지부에 쓰였던 방법으로, 메인 스코어 음악이 흐르다가 신이 잠시 넘어가는 경우나 중요한 대사가 들어가는 경우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 스코어 부분의 비트만 남기고 대부분을 제외시켜 믹싱을 하는 방법입니다. 메인 스코어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과하고 음악이 없는 경우 관객의 집중력과 영상의 흐름을 놓칠 수 있는 경우에 활용된 방식 같습니다. 조직의 모임에 등장하는 조커가 나오는 장면에서 이미 대사가 영상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지만 대사만으로는 긴장감을 지속시킬 수 없기에 영상 내내 사일런스 비트가 흐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앰비언스를 통한 분위기 조성

음악이 많이 깔리는 영화의 특성상 앰비언스가 앞으로 튀어나오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조커의 등장 이후 경찰청 옥상에서 하비 덴트와 배트맨 그리고 제임스 고든이 대화를 나누는 신입니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그에 따른 긴장감을 느껴야하는 부분인데 사일런스 비트를 사용하기에도 그 긴장감의 크기가 크기 않은 부분이죠. 이런 부분을 앰비언스를 통해 해결하고 있습니다.

유심히 들어보면 고담시티의 밤 앰비언스에서 많이 사용하는 사이랜 소리가 이번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전철이 지나가면서 들릴법한 마찰음인데 굉장히 고주파의 마찰음이 20여초 이상 들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만일 동시녹음 상황에서 의도치 않게 들어간 소음이었다면 대사가 맞물릴정도로 크게 들렸어야 정상이지만 카메라가 360도 회전을 하는 상황에서 저렇게 깨끗한 보이스를 녹음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확인을 할 수는 없지만 99%의 확률로 ADR재녹음인 상황으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도적으로 노이즈가 들어있는 앰비언스를 사용했다는 것인데, 이러한 디테일이 은연중에 관객들에게 소정의 정서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의도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마치며

이번 분석은 전반적으로 음악의 부재에 대한 관습을 깬 부분에 특히 집중적으로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엔지니어링적으로 훌륭한 레퍼런스이지만 이는 사실 글로 표현될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에 직접 들어보고 느껴야하는 부분임이 분명합니다. 본 작품의 사운드 디자인의 전반적인 느낌은 훌륭한 엔지니어링을 기초공사라 한다면 탄탄한 기초공사 위에 단단하고 화려하게 자리잡은 멋진 조각상을 감상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인 의견이 많이 반영된 리뷰이지만 공감되시는 부분이 많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울러 사운드 디자인을 위해 창의력이 발휘되어야하는 방법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관련 영상

유튜브에 올라와있는 해당 시퀀스 영상과 배트팟 제작영상입니다. 배트팟 영상 후반에는 사운드 디자인에 관한 메이킹도 잠시 등장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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